무나카타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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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1185~1568)에도 오시마는 계속해서 겐카이해(현해탄)를 사이에 둔 지역 정치와 교류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섬에 있는 유일한 불교 사찰 안쇼인과 훗날 오시마 성으로 알려지게 되는 산성의 존재를 기록한 역사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안쇼인과 아베노 무네토 전설
안쇼인은 일본 북부의 유력 가문인 아베 가문 출신 무장 아베노 무네토(1032~1108)와 관련이 있는 사찰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북부 전쟁에서 가문이 패배한 이후 그는 오시마로 유배되어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후손 아마묘토는 1264년 무네토의 거주지 터에 안쇼인을 창건했습니다. 사찰 북쪽에 있는 묘는 무네토의 묘로 전해지지만, 묘비는 1824년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이 사찰에는 중국 송나라의 동전과 13세기~14세기 무렵 한반도 고려에서 제작된 금동 불상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유물은 중세 시대 내내 무나카타 지역과 한반도 간에 교류와 무역이 지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 동안 오시마는 8세기부터 이 지역을 지배해 온 무나카타 일족의 통제 아래 해상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오시마 성: 무나카타 일족의 마지막 방어선
16세기 후반 전국 시대(1467~1568)의 혼란 속에서 오시마는 피난처가 되었으며, 역사 기록에 따르면 섬에 산성이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확인된 구조물 유적은 없지만,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지금도 '조야마(성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559년, 이 지역을 지배하던 무나카타 일족의 사제 영주였던 무나카타 우지사다는 규슈를 거점으로 경쟁 관계에 있던 무인 가문 오토모 일족과의 분쟁 중 오시마로 도피했습니다. 우지사다는 오시마의 산성에 몸을 숨겼다가, 이듬해 본토에 있던 자신의 거점인 고노미성을 되찾았습니다. 1586년 그의 사망과 함께 무나카타 일족은 명맥이 끊겼고, 8세기 이상 이어졌던 가문의 지배도 막을 내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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