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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카타의 문화재

  • 「神宿る島」沖ノ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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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오키노시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나카타 신앙의 일부로 숭배되어 왔습니다. 면적이 1km²도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섬은 오시마 해안에서 약 48km 떨어져 있습니다. 일본 열도와 한반도 사이에 있어 항해사들에게는 이정표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고고학 조사를 통해 4세기부터 9세기까지 이 섬에서 거행된 제례 의식의 발전을 보여주는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일본 초기의 제례 전통 및 외국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유래

8세기 초 편찬된 「니혼쇼키(일본서기)」에 따르면,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자신의 신성한 자녀들인 무나카타의 세 여신에게 겐카이해(현해탄)에 걸쳐 일본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해로를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그 보답으로 역대 천황들은 여신들을 추앙하고 숭배했습니다. 세 여신은 각각 무나카타 타이샤의 3대 신사인 오키노시마의 오키쓰미야, 오시마의 나카쓰미야, 그리고 본토의 헤쓰미야에 모셔졌습니다.

무나카타 일족은 규슈 북서부를 통치하며 오키노시마의 제례를 관장했습니다. 이들은 8세기 초 일본의 가장 오래된 기록에도 등장하지만, 실제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7세기 무렵 이 일족은 지역 행정관이자 고위 신관이라는 세습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16세기 후반 가문의 계보가 단절될 때까지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제례 관습의 변천

오키노시마의 제례는 4세기에서 9세기 사이 몇 차례 눈에 띄는 변화의 단계를 거쳤으며, 이는 주요 유적지에 남겨진 봉납물의 배치 흔적에서 드러납니다. 거울, 구슬, 검, 금동 장식품뿐만 아니라 멀리 중동에서 건너온 유리 제품과 같은 유물들은 이 섬이 대륙과의 교역 및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세기에 따라 봉납품의 출처도 변화했는데, 이는 무나카타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 변화 및 일본과 아시아 대륙 간의 관계, 그리고 해상 교역망의 발달 과정을 반영합니다.

제례는 섬 중앙 부근의 대형 암반 주변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가장 초기 단계에는 거울이나 덩이쇠(철제 주괴) 같은 봉납물을 바위 위에 직접 올린 뒤 돌로 덮거나 주위를 둘러싸는 방식으로 제례를 올렸습니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봉납물은 바위 그늘이나 돌출부 아래, 또는 부분적으로 그늘진 공간에 놓였습니다. 9세기에 이르러서는 현재의 오키쓰미야 근처에 있는 탁 트인 공터에서 봉납물을 바쳤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공간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제례 공간으로 넘어가는 변화는, 자연 숭배에서 시작한 일본 초기의 종교 관습이 훗날 ‘신토’라 불리는 체계적 관습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봉납물의 형태 또한 변화했습니다. 초기에는 무기와 장신구가 주를 이루었으나 8세기에는 베 짜는 도구와 악기를 본뜬 축소 모형이 등장했고, 9세기에 이르러서는 사람, 말, 배 모양의 조형물을 봉헌했습니다.

오키노시마에서는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은 8만 점이 넘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이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섬의 출입을 금지한 오랜 금기 덕분입니다. 이 중 많은 유물들이 일본의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보다도 오래된 것들입니다. 이러한 발견은 무나카타 신앙이 지역 및 국제 교류에서 핵심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며, 당시 지배층 사이에서 무나카타 가문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줍니다. 출토 유물들은 전체가 보존되어 있으며, 일부는 본토 헤쓰미야 경내의 심포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키노시마와 오시마

오키노시마, 그리고 오시마에서 가장 높은 미타케산(해발 224m) 정상에서는 서로 유사한 형태의 제의 유물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유물의 유사성은 미타케산의 제례가 오키노시마 제례의 후기 단계와 같은 시기에 거행되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제례 관습이 오키노시마에서 오시마로 점차 전해졌음을 나타냅니다.

오키노시마에 봉납물을 두는 관습은 9세기에 중단되었으나, 그곳에 모신 신에 대한 숭배는 계속되었습니다. 16세기 무나카타 일족의 계보가 단절된 후 제례 활동의 중심은 점차 오키노시마에서 오시마로 옮겨갔습니다. 오시마는 신성한 섬 오키노시마에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보호 완충지 역할을 하며 ‘수호의 섬’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시마 북쪽 해안에 오키노시마 방향으로 세워진 오키쓰미야 요하이쇼는 오늘날에도 멀리서나마 섬의 신을 경배하는 장소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오키노시마와 관련 유적은 2017년 ‘신성한 섬 오키노시마와 무나카타 지역의 관련 유산군’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등재 범위에는 신이 사는 섬 오키노시마를 비롯해 무나카타 타이샤의 관련 유적인 오키쓰미야, 오키쓰미야 요하이쇼, 나카쓰미야, 헤쓰미야, 그리고 신바루-누야마 고분군이 포함됩니다. 이 유산은 동아시아의 역동적인 대외 교류 속에서 발전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신성한 섬을 숭배하는 문화적 전통의 독보적 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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